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마카스 마사히코 (문단 편집) === 만주국 건국에 참여 === 1929년 귀국한 후 [[오카와 슈메이]]의 인도로 1930년 만주로 건너가 특무기관을 설치하고 1931년 [[만주사변]]의 시발점이 된 [[류탸오후 사건]] 조작에 참여했다. 1931년 11월, 나카노 고이쓰, 와치 다카시, 가사기 요사아키 등 관동군과 다이유호카이의 인물들과 함께 자치지도부를 결성하여 각 현 단위의 건국공작에 들어갔다. 1932년 3월, [[만주국]]이 건국된 후 이 자치지도부는 3월 15일 해산되었다. 선통제를 호위하여 만주로 데려오는 공작을 실시했으며 민정부 경무사장, 궁내부 자의, 대동공사 주재자 등의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이후 [[도조 히데키]]가 관동군 헌병사령관, 관동군 참모장으로 복무하던 시절 그의 오른팔로 활동했으며 [[만주국]]의 괴뢰황제인 [[선통제|강덕제]]를 조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만주국 통신사 사장 사토미 하지메를 통해 페르시아에서 아편을 입수, 만몽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막대한 비자금을 확보했다. 그리고 중국인 노동자를 만주에 고용시키는 알선 사업을 행하여서도 많은 돈을 확보했다. 엄청난 비자금을 쥐고 있던 덕분에 낮에는 관동군 사령부가 만주국을 지배하고 밤에는 아마카스가 지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훗날 총리를 지내는 [[기시 노부스케]]도 이때 아마카스의 부하직원이었고 그에게 1천만엔의 공작금을 전달받기도 했다. 현재 돈으로 '''90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적으론 유용하진 않고 특무공작에만 쓰는 양심은 있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